2008년 05월 10일
세가 : 그 끝없는 삽질과 불운의 역사 -콘솔편 1

메가드라이브를 해봤던 사람이라면 절대 잊을 수 없는 그 음성. 그 음성이 들어간 수 많은 게임들을 제작한 회사. 세~가~!
8-90년대 명작이란 명작은 다 쏟아낸 회사! 참으로 멋진기업이였죠.그런데 요즘 보면 참 불쌍한기업입니다.
사미랑 합병 이후로도 잘 안되었는지 최근 1분기결산만 무려 100억 적자에 사원해고만 수백명을 해버렸으니..참 뭐랄까
불쌍하달까요. 업계1인자는아니였지만 2인자로서 1인자들을 비웃는듯한 게임들을 마구 쏟아져낸 회사가 바로 세가였는데
말입니다.
그런데......세가하면 떠오르는것은?
소닉..네 소닉이죠.아니 그런 캐릭터적인면말고요. 회사이미지면에서 세가는?
"장사 졸라게 못하는 회사"
입니다.
그렇습니다. 세가는 콘솔사업에 진출을 시작하면서 유저들에게 단 한번도 장사 잘한다라는 이미지를 심어준적이 없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구요. 사미는 세가랑 합병이후에 예전보다 더 힘들어졌죠 슬프게도 -_-; 상품질은 1위였는데 사업수단은 3위보다
못한 꼴지였던게 세가였죠, 장사만못한게아니였죠. 끝없는 불운도 세가와 함께 따라주었지말입니다. 이제부터 그 세가의
삽질과 불운을 써내려보려고합니다.
일단 세가의 창립역사부터 알아보죠.
세가의 창립일은 1960년으로, 원래는 하와이에서 생겨난 서비스게임사에서 떨어져나온 회사입니다.세가라는 사명은 서비스게임의
앞자라 즉, SErvice GAme을 따와 SEGA라는 이름이 되었죠.세가의 첫 사업아이템은 게임이 아닌 주크박스나 어뮤즈먼트기기
제조였습니다. 그러다가 후에 데이빗로젠이 사장으로있는 같은업종인 로젠엔터프라이즈와 합병. 현재 회사명인
세가엔터프라이즈가 되었죠.
세가엔터프라이즈로 출범한 이후 세가의 첫 히트게임 페리스코프(1968)부터 시작해서 프로거(1978)로 대박을 내어 본격적으로
세가의 이름을 아케이드유저들에게 각인시키게됩니다. 이후 모나코 gp 라던가 스타쟈커같은 명작들로 아케이드시장에서 맹위를
떨치게됩니다.


자..아케이드에서 재미를 쏠쏠하게 본 세가는 이런생각을하게됩니다. "이제 슬슬 가정용으로 한번 진출해볼까?" 당시 아타리 2000
같은 가정용 콘솔같은게 큰 인기였고, 세가의 명작게임들을 집에서 할 수 있다는것은 유저들에게 크나큰 매력이였음이
틀림없었거든요. 아타리2000으로 나온 세가게임들의 짭퉁들은 세가가 만든 본편들에비해 심하게 못미쳤고말이죠.
그렇게해서..세가의 첫 콘솔게임이 등장합니다
바로..

일명 세가 마크 1이죠. SG-1000의 베이스는 SC-3000으로 세가가 예전에 만든 컴퓨터를 베이스로 한 물건이였습니다.SC-3000은
MSX에 밀려 빛을 못본 컴퓨터였죠. SG-1000(이하 세가마크1)은 이 SC-3000에서 키보드를 떼어낸 물건으로 외장형 키보드만사서 붙이면 SC-3000과 완전히 같아진물건이였습니다.
첫공개는 1981. 실제로 발매된건 1983년 7월이였는데....처음엔 세가아케이드게임들의 콘솔판이 속속등장하며 꽤 괜찮은 인기를
가졌었습니다. 세가아케이드게임이 워낙 양질의 퀄리티였기에 다운이식작이여도 집에서할 수 있다는것은 큰 메리트였거든요.
..그게 ..같은시기에 "닌텐도 엔터테인먼트 시스템"이 발매되어버렸습니다..줄여말하면 NES, 일본어판 제목은 패밀리컴퓨터,
한국에서는 패밀리로 불리는 그 괴물이 나타난거죠--;

둘다 1983년 7월로 거의 같은시기에 발매되었습니다.. 닌텐도도 당시에도 동키콩이나 게임와치등으로 상당히 유명한 회사였기에
아케이드에서 맹위를 떨치던 세가로서도 결코 방심 할 수 없었던 회사였습니다. 그런데 재수없게도 발매일이 비슷한시기에
맞아떨어졌죠. 물론 둘이 처음나왔을때는 워낙 박빙이라 누가이길지 감히 예상못했었습니다...하지만 얼마 가지않아 큰 차이가
나게되버리죠. 그 이유는..
세가마크1을 발매하기전 게임업계에선 역사에 기록될만한 유명한 사건이터지는게 그 유명한 "아타리쇼크"입니다.

아타리쇼크로 인하여게임질은 질대로 떨어지고 무엇보다 심각한것은 아타리 쇼크로
인하여 투자자들이 게임업체에서 완전히 등을 돌렸다는겁니다. 그리하여 세가나 닌텐도나 저질개판이 된 콘솔게임업계의 이미지를 바꾸려고
서로 다른 전략을 짜게되는데,
닌텐도는 검증을 받은 회사만이 자사의 기기에 게임을 개발할 권리를 내어주고 게임패키지에 닌텐도의 라이선스를 받았다는
스티커를 부착하게 합니다. 덕분에 저질게임의 무모한 양산을 막고 게임개발사의 체계적인 관리가 가능했죠. 이게바로
최근에 보편화된 서드파티 시스템입니다. 닌텐도 덕분에 게임시장은 아타리쇼크에서 벗어나서 게임시장의 활기를 되찾게 되었죠.

그럼 세가는 어땠냐구요? 세가는 완전히 반대였습니다. 다른게임회사들의 자사기기로의 게임개발을 완전히 막아버렸던것이죠-_-;
이 체제는 세가 마크3까지 이어져 3대까지 고질적인 소프트갯수 부족문제를 겪게됩니다. 물론 다른회사게임들도나왔지만 엄연히
세가에서 하청을받아 개발한 퍼스트파티의 게임들이였다는게 문제. 기기성능자체도 패밀리보다 크게 좋지도않았기에 마크1은
패미컴에게 얼마안가 가볍게 밀려버렸죠.
세가의 콘솔사업은 시작부터 불운과 삽질이 동반했던 것이였습니다.-_-;
어쨋든 키보드나 디자인변경을 해서 발매된 마크2, 그리고 그 후에 세가마크3가 발매되었는데 세가마크3의 경우는 CPU를
갈아치워 패미컴을 상회하는 스펙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러나 역시 서드파티는 고려하지않는 세가의 완고한정책, 무엇보다
세가마크3를발매한 해에 슈퍼마리오 브라더스가 등장한 판이라 세가마크3는 NES를 꺾지못하고 2인자로 남게됩니다.

뭐 이렇게 삽질과 불운이 난무했다해도 세가 마크3는 결코 실패한 물건은아니었고 어느정도 꽤 성공한 기기였습니다. 세가의 명작아케이드게임을 유일하게
집에서 즐겨볼 수 있엇던 물건이였으니까요. 물론 아케이드게임뿐만아니라 판타시스타같은 세가마크3용 오리지날게임들도
퀄리티가매우 출중했습니다.
마크3는 이후 FM음원을 삽입해 세가 마스터시스템으로 이름바꿔 재출시했습니다. 이렇게 나열해보니 SG시리즈만 무려
4종류!같은게임기를 뭐이리 많이발매했는지..아이언맨마냥 끝없는업그레이드본능이 세가의 첫 모델부터 여실히 드러나는군요.
각설하고, 콘솔사업으로 어느정도 재미를 본 세가는 이제 확실한 목표를 잡게되죠 그것은 바로
"타도 닌텐도!"
타도 닌텐도를 외치며 제작한 게임기가 바로 대망의 그 물건

입니다. 발매일은 1988년으로 고급스러운 유광블랙보디에 가운데 새겨져있는 황금색 16비트! 네 메가드라이브는 최초의
16비트 게임기였습니다. 닌텐도 패미컴에 비해 두배나 강한스펙! 뛰어난 발색! 으로 전세계의 게임유저들에게 큰 충격을
주게됩니다. 더군다나 패미컴의 후속기기인 슈퍼패미컴이 2년이나 늦게 발매됨에 따라 메가드라이브는 2년동안 정말
날개돋힌듯이 팔려나가게되죠.이번엔 전기종에서 얻었던 교훈을 살려 서드파티시스템도 도입했기때문에 소프트또한 빈약하지 않
습니다! 특히 2년뒤에 발매한 슈퍼패미컴보다 훨씬 빠른 CPU. 광고에서 표현하듯, 블라스트
프로세싱을 보여주었기에 액션게임이나 스포츠게임에 아주 적합해 북미나 유럽에서 많은 사랑을 받게됩니다.
그런데....슈퍼패미콤이 발표된후 세가의 임원진은 충격과공포에 휩싸이게됩니다. 슈퍼패미콤스펙이....당시로서는 정말
말도안되는 어이없는스펙이였죠. cpu는 다행히도 메가드라이브가 앞섰지만 동시발색수와 사운드는 메가드라이브스펙의
배를 넘는 수준으로, 이 스펙의차이는 아케이드이식작의 퀄리티에서 두드러지게됩니다. 세가로서는 조급한마음이
들기시작했죠.


다행히도 이후 91년에 세가의 초절정 히트작중 하나인 바람돌이 소닉이 발매되어 슈퍼패미컴이 발매된 이후로도 잠시주춤했던
판매량을 다시 견인하여 세가는 콘솔업계에서 닌텐도와 비등할정도로 성장하게됩니다. 아마 이 시기가 세가로선 가장꿀맛
같은 황금기가 아닐까 생각되네요.

하지만 괴물같은성능의 슈퍼패미콤이 등장한 이후 판매량은 역전되고 다시벌어져 세가는 고심을하게됩니다. 그래서 생각한게 스펙을 높이는
어태치먼트를 기획하게되죠. 그런데 다들 성능이 부실하고 가격만디립다 높아 전부 병신취급받았습니다. MD엔 유난히 이런 병신
어태치먼트가 상당히 많았는데, AVGN에서 소개되서 유명해진 세가CD나 32X,등이 그것이죠.

첫번째로 나온건 메가어댑터라고 마스터시스템을 돌리게 해주는 어태치먼트였습니다. 하위기종을 지원해주는 어태치먼트정도야
병신은 커녕 오히려 매력적인 기기였죠. 하지만 마스터시스템게임이 워낙적은데다가 마스터시스템에 이식된 아케이드게임이식작은 메가드라이브에서 모두
업그레이드되서 이식되었기에 큰 메리트는 없었습니다. 뭐 발매일이 89년이니 발매초기 부족한 소프트를 어느정도 견인해주지
않았을까....생각되기도하네요.
그다음 나온게 테라드라이브. 메가드라이브와 PC의 일체형. 세가와 IBM의 협력으로 탄생한 이 기계는 나온지 얼마안되서 아주 조용하게
뭍혔습니다. 아주 깔끔하게뭍혀서 기억하는사람이 별로없죠. PC CPU와 메가드라이브 CPU를 동시에 사용해서 컴퓨터 CPU가
폭주할경우 메가드라이브 CPU를 사용해서 처리를 하는 이상한 기능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정작 메인인 CPU가 너무 후지고
가격또한 뿅가서 아무도 눈길을 주지않았습니다. 아니 그것보다 좋은 스펙높은 피씨가 넘처나는데 게임기붙어있다고 스펙낮은
컴퓨터를 고가에 살리가없잖아요.

그리고 메가넷......이라고....무려 메가드라이브 모뎀 입니다.당시 고급 제품이였던 모뎀을 사용해 메가드라이브로 넷플레이
실현가능! 발매일이 90년인데 우왕 당시 온라인게임이라고는 쥬라기공원같이 텍스트게임이 고작이였죠. 한마디로 뿅가는
기기였긴했는데...소프트도 후지고 모뎀으로연결해서 전화비도 만만치않았고 당시엔 아케이드시장이 활발했던 시기라 사람들이
굳이 집에서 넷플레이를 할 생각을 없어서 아주 조용히 묻혔습니다.

그래도 TV광고도했는데..
두번째는 메가CD!

당시 CD롬이 등장한지 얼마안된 시기였죠. 세가는 잽싸게 CD롬을 이용하여 메가 드라이브에
어태치하는형식으로 메가CD를 발매합니다. 메가드라이브에 메가CD를 붙이면 CD롬과 더불어 스펙업그레이드의 효과도 있었죠.
덕분에 실피드같은 3D폴리곤을 사용한 게임도 제작될 수 있었습니다.그런데 세가에서 직접 낸 소프트를 제외하곤 서드파티에서 내
준 소프트중에서 제대로된게 거의 없다는게 문제였습니다.
메가CD의 주특징이 바로 고용량 CD를 사용한 동영상재생이나 CD음원재생인데, 비록 자
체 발색수나 스펙이 후덜려 고화질은 불가능했지만 그래도 다른게임에선 보기힘든 게임내 이벤트부분에 동영상삽입이 가능했죠.당
시로서는 신기한 기능이였기때문에 메가CD는 유저들의 시신경을 각인시켜줄 수 있게되었습니다. 하지만 그것뿐, 메가CD로 나온
게임이라는것들은 무분별하게 동영상만 마구처쑤셔넣어 액션이라느니 어드벤쳐라고 지껄이는것들이 다수였고, 반대로 메가CD의
기능은 전혀 쓰지않은채 배경음악만 CD음원으로 해서 발매한 게임들이 부지기수였습니다.
소닉cd의 메가cd버전 오프닝과 그 오프닝의 실제 퀄리티. 동영상질은 그다지 좋지않습니다.
다행히도 코나미의 스내쳐, 게임아츠같은 개념제작사가 루나나 실피드같은 명작을 내주었지만 제대로된 게임에 비해 쿠소소프트
가 압도적으로 높았죠. 또 CD롬 초창기라 메가CD에 부착된 CD롬은 무려 1배속! 기동 로딩이 아주 환상적이였다고 하더군요.
더군다나 가격은 4만9천8백엔! 메가드라이브에 붙이는 어태치인데 4만9천800엔! 메가드라이브가 2만1천엔이였으니 2배를
상회하는 가격이였습니다. 말도안되죠? 그런데 이정도에서놀라시면안됩니다. 빅터와 제휴해서 내놓은 메가드라이브와 메가CD의
일체형인 원더메가의 경우가격이 8만2천800엔....무려 82만원! S단자가 들어있다고하지만 가격이 컴퓨터가격이니 누가사겠습니까.



94년에 등장한 아이와 메가cd. cd플레이어와 게임기일체형이라는 컨셉으로 등장했고 일체형중 최저가지만
새턴나오기직전에 발매했는지라 별의미도없이묻힘.
avgn 메가cd리뷰
마지막으로는 망한게임기순위를 매기면 언제나 상위권에 위치하고있는 세가의 삽질로 대표격으로 치부되는 바로 그 게임기.
32X!

병신중에 상병신
메가드라이브 병신어태치먼트기기의 마지막을 화려하게 장식한 그 기기죠. 북미에서 새턴이 발매되기직전에 메가드라이브로 돈
좀 더 벌어보잡시고 내놓은 기기입니다. 메가드라이브로 훌륭하게 성공했는데 그 맛을 좀 더 느껴보고싶었던것이였죠 세가는..
사실 어태치먼트로내놓기보단 다른기종으로내놓거나 팩에 특수칩을 박아 내놓으려고했는데 제조원가가 너무 비쌌습니다.
32x테크데모.지금 이런걸보다니 유튜브는 축복인듯
그렇게 해서 어태치형식으로 등장한 32X스펙은 당시 등장한 64비트 재규어급의 그래픽이였고 당시 빅히트중이였던 버추어파이터1
이라던가 스타워즈아케이드등이32X로 이식되어 초반엔 꽤나 잘팔릴거같다가 이내뭍혔죠. 새턴이 플레이스테이션을 견제하느라
발매일을 앞당긴데다가 32X의 자체문제도 상당했고 (메가CD까지 어댑터가 3개, 소프트도 없다) 새턴이 열심히 광고때리던중이라
버추어파이터를 콘솔로 빨리즐길 수 있다는 문제를 제외하곤 도통 메리트가 없었던겁니다. 결국 새턴의 앞당긴 발매로인해 32X는
50만대도 제대로 못팔고 피박을 쓰게되죠.
avgn 32x 리뷰
그래도 버추어파이터는 세가가 직접이식한덕분에 훌륭히 이식되었습니다. (새턴은 외주로이식해서 역시 병신이식;)
이후 새턴에서는 병신같은 어태치 전략을 쓰지않게되지만 장사와 운으로서는 세가콘솔사상 최악의 길을 걷게되는계기가옵니다.
그이야기는 다음편에 ㅠㅠ/
# by | 2008/05/10 18:06 | 게임 | 트랙백 | 덧글(12)
















☞ 내 이글루에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도움말]
이후에 또 삽질이....
대등하게팔렸지만 넘지는못했죠..
물론 판매량에서 앞서나갔던적은있었지만 메가드라이브가
snes에비하여 북미에서 압도적으로 팔렸던적은없었던거같네요.
(그것도 45% 였었으니 SNES가 몇%였는지 몰라도 과반이 아니었다는 의미에서)
전체 기간동안 메가드라이브는 계속 SNES 보다 판매량에 우위에 있었고
65% 이상의 시장점유율을 유지했던 기간도 길었다고 보았습니다.
넘지 못했다.. 는 표현은 무리가 있지 않을까요.
snes북미판매량이 2천만대가량, 제네시스가 1200만대가량으로
제네시스가 북미에서 snes보다 전체 판매량이 우위가 있다는 말은 믿기가 힘드네용.
그런데 후반에 세가가 제네시스 관련 사업을 완전 접고 새턴으로 이동했을 때,
동키 콩 컨트리(슈퍼 동키콩) 시리즈라는 대박이 터져서 SNES의 수명 연장과
제 2의 전성기에 이바지했지요. 그래서 후반에 가서야 SNES의 판매량이
제네시스를 압도하게 된 겁니다.
새로운 사실을 알게됬군뇨..